
금성기계
70년대 시작한 반도체 부품 제작 공장


** 금성기계는 어떤 곳인가요?
금성 70년대에 들어왔어요. 지금보다 동네도, 기계도 낙후했지만, 그땐 경기가 좋았어요. 경기가 좋다 보니 사람도 북적북적하고 그랬어요. 그때는 기계 부품 주문들이 많이 들어와서 무척 바빴어요. 처음에 공장들은 문래동 1, 2가에 먼저 들어오고 점차 다른 곳으로 번졌어요. 80년대에도 경기가 좋았죠. 그때도 이 주변에는 다 주택가였거든요. 구멍가게도 있고 포장마차도 많았어요. 특히 80년대 후반은 참 좋았어요. 90년대까지도 경기가 괜찮았죠. 2000년대 들어오면서부터 주문도 많이 줄고 공장들이 다른 곳으로 밀려나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잘 되는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가고 못 움직인 사람들이 여기 남아 있는 것 같아요. 여전히 저도 문래동에 있네요.
** 문래동 공장도 많이 아시겠어요. 다른 공장과 협업도 많은가요?
금성 그렇죠. 바쁘면 가져다 하고, 또 내가 바쁘면 그 사람들도 좀 주고 그래요. 예전에는 모임도 있었는데 지금은 많이 하지 않아요. 예전에는 같은 금형 공장끼리 몇몇 모여서 팀도 만들고 친목회도 하고 그랬는데 다들 어려워지니까 분산되었어요. 다들 떠났으니 친하게 지내는 사람도 이제 몇 사람 없어요.
** 문래동에는 작업 후 남은 쇳가루를 수거하러 오시는 분들도 계시잖아요?
금성 그 사람들이 가지고 가서 녹이고 다시 판매해요. 쇳가루니까 다시 녹여서 쇠로 제조를 해요. 아침마다 수거하죠. 수거하면서 장갑 같은 것을 주고 가져가요. 이 동네에서 서로 돕고 사는 거죠.
** 말하고 싶은 문래동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금성 문래동은 기계를 하는 사람들이 점점 떠나고 있어요. 그 외에는 다른 변화가 잘 없는 것 같아요. 일이 없으니까 우리 같은 공장들은 자연스럽게 외곽으로 가는 거죠. 우리 세대하고 젊은 세대가 다르잖아요. 저는 기술자라서 저의 이야기를 젊은 분들이 궁금할지 모르겠어요. 이야기라고 해봐야, 여름에는 더운 데로 지냈고, 겨울에는 추운 데로 지낸 거죠. 그때는 그때대로 재밌었고, 지금은 지금대로 또 재미있어요. 젊은 사람들 하는 것 보고 있으면 우리하고는 조금 다른 것 같아요. 그런 것이 또 발전이니까 좋고 그래요.
** 문래동이 어떻게 변해가길 바라세요?
금성 제가 바란다고 되겠어요. 시대에 따라가야죠. 세대에 따라서 다르게 생각하겠지만, 예술을 하는 젊은 사람들도 보기 좋습디다.


글 신동혁 | 사진 송기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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