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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예술공간 이포

기록 기반의 미디어 작가 박지원이 운영하는 대안예술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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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안예술공간 이포는 어떻게 시작되었어요?

 

박지원  2008년 3월 문래동으로 왔어요. 그때는 이곳이 사라질 위기의 공간이었고, 없어진다고 해서 이 마을을 ‘기록하자’는 목적이 있었죠. 떠돌이 작가로 살다가 전입신고를 하고 마을 주민이 되었어요. 처음 들어온 뒤 2년 정도 개인 작업실 '스튜디오 301'에서 작업을 하고 마을을 탐색하다가 2년 계약기간이 끝날 즈음, 문래동 골목길에서 버려진 공간을 만났어요. 그 공간으로 들어가서 '이포'를 만들었죠. 이포는 문래동에서 태어난 공간이에요. 공간을 할 생각은 없었으니 이포는 장소 특정적으로 태어난 공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마을의 당사자로서 ‘마을과 이웃’이라는 키워드로 공간의 성격을 만들어 왔습니다. 그런 지역 기반의 힘을 가지고 저와 이포의 예술 활동을 확장해 나갔어요. 지금은 단순히 지역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글로컬, 세계로 열려 있는 지역 기반의 예술의 창구의 역할이 가능하다는 생각까지 발전했어요. 

 

 

** 그동안 문래동에서 진행한 프로젝트를 소개해주세요.

 

박지원  2011년 10월 열린 <Back to the future(미래로 돌아가다)>부터 <옥상민국-옥상 끝에서 세상을 외치다(2014)>, <내용증명-당신의 삶을 증명하라(2014-2015)>, <안티젠트리피케이션-일상생활비판(2018)>, <도심제조지역 공공미술-기술과 예술의 마을 문래아카이브 『문래공감』> 등 이포의 기획 프로젝트는 저의 삶을 근거로 한 작업이면서, 마을을 둘러싼 지역의 변화, 예술가가 민감하게 반응하였던 시대, 사회적 문제를 예술적 상상력으로 풀어내고자 했던 전시기획이었습니다. 예술인들의 사회적 역할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기획은 저의 관심을 동료 작가들, 주민과 함께 하는 것이에요. 그것이 우리의 삶을 지켜내길 바랐던 것 같습니다. 우리의 삶을 지켜내고 우리의 내일을 밝혀줄 일에 대한 고민이죠. ‘기술과 예술의 마을’로서 마을이 끊임없이 어떤 가치를 생산하면 그것이 우리를 둘러싼 여러 변화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우리를 지켜 주리라 생각했어요. ‘우리 스스로를 가치롭게 하는 것들이 우리를 지켜줄 것이다’라는 믿음과 지향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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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가로 지역의 변화를 바라보는 시선이 궁금합니다. 또 문래동은 어떻게 변해가면 좋을까요?

박지원  문래동 안과 밖의 변화가 많았죠. 첫 프로젝트부터 지금까지 이포에서 만났던 수많은 이웃, 작가, 동료, 마을의 엄청난 변화들, 그 변곡점들을 십여 년 동안 겪었어요. 늘 외부의 변화로부터 안이 요동을 치거나 변화에 대응하는 방식 때문에 갈등이 생겼어요. 내부의 움직임이 외부로부터 관심을 받으면서 다른 시설이 들어왔죠. 과거에는 재개발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공간이었다면 지금은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더 엄중하고 냉혹한 세상이 되었어요. 단순히 물리적으로 쫓겨나는 문제를 넘어서서 지금은 창작 예술인으로서 삶의 조건이 위기에 닥쳤어요. 마을을 기반으로 하는 예술 활동은 물론 오랜 시간 삶의 생태계를 가꾸어온 소공인들의 삶들이 위기를 겪는 지경에 이른 거죠. 변화는 사실 제가 들어오기 전부터 있었어요. 원주민이 있었고 기술인이 들어오면서 선주민의 젠트리피케이션이 있었고 다음에는 문화예술인이 함께 섞이면서 마을의 변화를 일으켰고 그 관심으로부터 들어온 시설들로 인해 상업지역으로 변화되는 또 다른 변화가 있었죠. 공장 사장님들도 처음에 왔을 때 우리 예술인들과 같은 상황이었다고 해요. 시끄러운 공장이 주택지에 들어오니 좋아하지 않았겠죠. 생활공간이 공장으로 바뀌고 기계가 들어왔어요. 시간이 지나 정책의 변화, 도시재생의 물결도 불었죠. 많은 변화 속에서 마을 안에 있는 주체들이 끊임없이 흔들렸어요. 제가 바라는 것은 지역의 예술 주체들이 소비되어지는, 소모되어지는 대상들이 아니고 마을의 변화와 활력을 이끌어가는 지역 주체로서의 가치, 그 가치의 소중함을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그 소중함을 모른다면 어떤 정책이나 사업도 좋은 결과를 만들지 못할 거에요. 어떤 외부의 힘없이 어울리며 살았던 우리 스스로가 자발적 주체였던 때가 있었습니다. 에너지가 좋았죠. 지금은 마을을 둘러싼 외부 환경변화로 인해 마을 주체들은 여전히 흔들리고 쪼개지고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의 자발적 에너지로 내일의 마을 변화와 활력을 만들어 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말하고 싶은 문래동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박지원  문래동에서 만나는 수많은 예술적 재료에는 감동이 있어요. 사람, 이야기, 작업, 업종과 직종에 따른 재료, 구멍가게서부터 새로운 시설까지 이렇게 다양하고 풍부한 예술적 재료가 있는 공간이 있을까요? 그런 예술적 재료를 만나는 일이 좋아요. 예술가들은 시대를 읽는 남다른 감각을 가진 사람들이라 생각해요. 문래동에서는 아주 민감하고 특별한 감각이 마음껏 발현되는, 예술적 촉들이 마을의 수많은 예술적 재료를 만나서 예술적 가치를 끊임없이 생산하고 있어요. ‘삶의 예술’이라는 관점에서 어디를 가도 예술적 재료는 있겠지만 저 개인적으로 문래동에서 만나는 예술적 재료만큼 시대의 변화를 잘 보여주고 있는 곳은 없다고 생각해요. 

 

 

** 작가님에게 대안예술공간 이포는 어떤 곳인가요?

박지원  ‘이포’라는 공간 이름은 저의 고향마을 이름으로 소리만 가져온 것이고요, 한자로 ‘배꽃 피는 나루터’라는 뜻이 있습니다. 저는 강가에서 태어났고 강의 이미지를 좋아해요. 제게는 배꽃 피는 나루터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정서가 있어요. 살면서 많이 변했지만, 고향처럼, 이렇게 진하게 마을을 만나고 있어 참 좋아요. ‘마을공동체’에 대한 관심과 고민이 점점 더 깊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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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신동혁 | 사진 송기연

자료제공 대안예술공간 이포

<말하는 문래> 아카이브북은 술술센터에서 무료배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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