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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슈퍼

 50년 토박이 문래동 4가 사랑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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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문래동으로 왔을 때 어떤 느낌이었나요?

 

한양  그때는 달동네였어요. 1가, 2가는 공장이 있었지만 4가는 주택가였어요. 한 집에 많게는 서너 가구, 세 살고 단칸방에 가족이 살고 그런 동네였죠. 주택이 공장으로 바뀌면서 가정집들은 떠나기 시작했어요. 공장들이 문래동으로 오기 시작했는데 청계천에서 온 사람들이 많았어요.

 

 

** 그때와 지금의 문래동은 다른가요?

 

한양  예전에는 공장 한 곳에 직원들이 6~7명, 많게는 20~30명씩 있었어요. 80년대 후반에 경기가 정말 좋았거든요. 밤에도 사람이 많고 낮에 하는 장사보다 밤에 하는 장사가 잘 되었어요. 그 정도로 경기가 좋았는데 IMF 터지고 실직자도 많고 공장들도 예전만 못해요. 2000년도 후반까지도 예전처럼 살아나는 느낌이 들지 않았어요. 그 느낌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어요. 물론 돈을 벌어서 외곽으로 나간 사람도 있지만, 여전히 여기 머무는 공장이 많죠. 문래동 공장들이 돈을 벌고 일이 많으면 동네를 떠나고 들어오는 변화가 많은데 지금은 그런 변화가 없죠. 공장이 떠나기만 해요.

 

 

** 문래동 공장 사람들은 어떤 제품을 많이 찾아요?

 

한양  손 씻을 때 필요한 비누, 트리오, 배가 고프니 간식거리로 빵이나 음료수, 꿀물, 우유 같은 것을 많이 찾죠. 조금 전에 왔던 사장님도 직원들이 출출할 시간이니까 간식사러 오신거에요. 

 

** 말하고 싶은 문래동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한양  한양 저는 52년생이고 문래동 4가 자리에서 태어났어요. 여기가 과거에 일본인 사택이었는데, 어렸을 때는 먹을 게 없으니 옥수수나 콩 같은 것을 심어서 먹었어요. 처음에는 수도도 공동 우물을 썼죠. 골목에 새끼줄로 자기의 텃밭을 표시하다가 점차 나무로 담을 만들고 마당을 만들었어요. 그때는 비만 오면 땅바닥이 질퍽질퍽했고 주인 없는 땅에 밭을 만든 사람도 있었어요. 다른 지역에 비해 영등포지역이 평지잖아요. 장사꾼들이 몰렸어요. 차도 없을 때라 수레로 장사를 하는데 채소, 과일, 생필품, 사탕, 국화빵, 불량식품까지 없는 것이 없었어요. 제 기억에 이 동네에서 군인 훈련이 많았는데 공포탄을 쏘면 탄피가 커요. 탄피 주워서 사탕이나 건빵으로 바꿔먹었어요.

 

** 문래동은 어떤 곳인가요?

 

한양  제 고향이죠. 좋죠. 저는 이렇게 문 열면 평상 마루가 있는 곳이 좋아요. 여태까지 이렇게 살았기 때문에 편해요. 친구나 선후배 만나서 수다 떨고 소소한 재미도 있어서 지금도 이 동네가 좋아요. 정감 있고 다들 열심히 일하면서 먹고 사는 그런 곳이에요. 나쁜 사람도 없죠.

 

 

** 문래동은 어떻게 변해가면 좋을까요?

 

한양  저는 슈퍼를 운영하기 때문에 오히려 잔잔한 파도 같이 특별한 변화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바라는 건 특별히 없어요. 변화에 따라 저도 자연스럽게 적응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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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사진 신동혁

<말하는 문래> 아카이브북은 술술센터에서 무료배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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