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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수공구

80년대 시작한 특수 공구 제작 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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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문래동으로 왔을 때 어떤 느낌이었나요?

서울특수  1979년에 문래동으로 왔습니다. 처음에는 근처에서 시작하다가 IMF 때 지금의 이 자리로 옮겼어요. 제가 처음 시작할 때는 초기라서 일이 많았어요. 노력하면 사는 데에 지장이 없던 시절이라 밤늦게까지도 일을 했고 일이 많아서 평일, 주말 없이 계속 일만 해야 했어요. 문래동 길거리도 무척 복잡했어요.

 

 

** 그때와 지금의 문래동은 다른가요?

 

서울특수  이 앞이 좁은 골목이지만, 그때는 일들이 많아서 오가는 차도 많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차가 없어요. 저희 같은 공장들은 떠나는 분위기죠. 공장이 떠나고 먹거리나 술집, 다른 업종이 들어와요. 예전에는 대부분 소규모 공장들이 기계 한두 대 가지고 들어왔어요. 그 산업이 그때는 잘되어서 이 동네가 무척 복잡했는데 지금은 다들 떠나고 있어서 거래처들도 점점 문래동 안에서보다 외부에서 일 처리를 해요. 그러다 보니 규모가 조금이라도 커지면 문래동 밖으로 나가고 아니면 문을 닫죠. 그 자리에는 계속 음식점이나 카페가 생기지 공장을 개업하는 곳은 없어요.

 

 

** 예전에는 주변 공장 사장님들과 자주 어울렸나요?

 

서울특수  그때는 잘 어울렸죠. 술도 마시고 놀기도 하고 그랬어요. 어울려서 당구도 쳤죠. 일이 많아서 서로 바쁘면 돕고 일도 주고 그랬어요.

 

 

** 문래동의 변화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이 드세요?

 

서울특수  이 동네의 분위기가 예전만 하지 못한 이유가 있겠죠. 저희 같은 공장에서 어떤 일을 처리할 때 하나부터 열까지 다른 공장들과 연결되거든요. 그런데 일을 할 때 그런 연결이 잘되지 않고 어떤 부분은 이 근처 가까운 공장이 아니라 외부에 맡기려다 보면 불편해요. 비용도 더 들고 그러다 보니 하나, 둘씩 빠지는 거죠. 문래동 안에서 일 처리를 하는 것보다, 외부에서 하는 것이 빨라요. 그래서 처음부터 외부에서 하죠. 거래처들도 부천, 인천, 시흥 쪽으로 빠질 수밖에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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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하고 싶은 문래동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서울특수  어느 곳이나 사람 사는 곳은 정말 힘들어요. 사는 게 바빠서 그때그때 맞춰서 살죠. 우리 같은 공장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조금 형편이 나아지면 기계를 하나 더 갖추고 싶어져요. 기계를 갖추면 외형적인 매출은 늘지만 위험 부담이 있어요. 예전에는 어음 거래도 했기 때문에 돈을 못 받는 경우, 회사가 부도를 맞는 경우도 많았어요. 그렇게 지금까지 버티고 있어요. 기계를 더 갖추고 조금 더 커지면 공장을 넓히거나 이전하려는 생각도 하죠. 애들 커가고 집을 마련하고 일하면서 열심히 살다 보니 십 년, 이십 년, 60대가 금방 온 것 같아요.

 

 

** 문래동은 어떻게 변해가면 좋을까요?

 

서울특수  같은 업종끼리 잘 모여 있어야만, 일 처리가 원활하게 되기 때문에 이런 업종, 단지를 만들어서 외곽이나 어느 지역에서 할 수 있도록 방안을 고민해줬으면 해요. 그 뒤 이 동네의 변화를 주는 사업을 시작하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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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사진 신동혁

<말하는 문래> 아카이브북은 술술센터에서 무료배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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